일반적으로 영성과 관련된 새로운 경향의 심리학을 기존의 심리학파인 정신분석, 인지행동, 인본주의와 비교하면서 제4세력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Spirituality(불성/영성)의 개념이 몸/마음/사회에 기반한 기존 심리학파와 무관하게 전개된 것은 아니다. 이렇다 보니 Spirituality에 대한 접근 방식이 약간씩 학파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Spirituality 개념의 정립에 기여한, 이들 각 학파의 대표적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정신분석에서 분파한 칼 융(Carl Jung, 1875-1961)의 견해이다. 프로이트는 Spirituality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영적 체험이나 명상경험을 퇴행과 같은 부정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반면에 융은 원형(archetype)이라는 어떤 영적 원리를 인정하였다. 이때의 원형은 바로 집단적 무의식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영적인 자기이다. 이런 자기(self)의 개념은 인도의 아트만(Atman)이란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다. 칼 융에게 있어 자기(self)는 정신의 전체성이고, 참 본질로서 초월적 요소이며, 초월적 자아로서 자기 인격의 궁극적인 개별적 자아이다.(Len Sperry and Edward P. Shafranske ed.(2005), Spiritually Oriented Psychotherapy,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p.53.)
물론 융에게서 ‘자기(Self)’는 마음의 내적 역동에서 드러난 프로이트의 자아(ego)와는 다르다. 프로이트의 자아는 현실적 적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추동(id)나 초자아(super-ego)와 대비되는 마음의 구성물로서 자기(self)이다. 칼 융은 신체[身]는 감각과 정서로 구성되고, 마음[心]은 생각과 개념들로 구성된다면, 영혼[靈]은 제3의 관점으로서 이것들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융은 영혼을 의미하는 soul과 정신 혹은 마음으로 번역되는 psyche와 동의어로 함께 사용한다.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보면, 세속적 자아가 고통받고 있을 때, 융은 자기라는 ‘작은’ 자아(ego)가 아닌 보다 ‘초월적’ 영혼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 치료자는 영혼을 찾도록 돕는 조력자의 위치에서 고통받는 영혼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융은 프시케를 종교적이거나 신학적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런데 그는 좁은 의미의 자아가 초월적인 영적 경험을 하게 되면, 두렵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외감과 함께 강력한 황홀감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점은 칼융의 분석심리학이 영적 심리학과 종교적 체험의 그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영적 영역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통합은 필요하지만 과연 이게 효과적인 접근인지는 논의의 대상이다. 반대로 종교적인 접근은 심리학의 독립된 영역을 해손시킨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