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9): 유식불교와 서구심리치료의 통합
-유식 삼성설 모델과 인지행동치료
Ⅲ. 분별 집착의 문헌적 이해
3. 『성유식론』에서 자아와 세계
『성유식론(成唯識論)』은 제목 그대로 유식 이론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호법(護法, 530~561)이 기존 유식 논사들의 의견을 규합하여, 세친(世親, 320-400)의 「유식삼십송」을 해설한 유식론의 대표적인 논서이다. 동북아시아의 유식 사상사에서 『성유식론』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깊게 영향을 미친 저술 가운데 하나이다. 『성유식론』의 삼성설은 앞에서 살펴본 무착(無著, 310-390)의 『대승장엄경론』과 『섭대승론』의 입장을 계승한다.
『성유식론』은 변계소집을 ‘허망한 집착’으로 규정하고, 인식의 구성체계인 온처계(蘊處界)를 집착하여, 그것을 ‘세계[法]’로 삼고 ‘자아[我]’로 삼아서 ‘차별상을 일으키는 것’ (24. 『成唯識論』(大正藏45下), “遍計種種 所遍計物 謂所妄執 蘊處界等 若法若我 自性差別 此所妄執 自性差別 總名遍計所執自性”)으로 정의 한다.
여기서 온처계는 인식의 대상[境], 감각기관[根]와 의식[識]의 결합으로서 연기로 이해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의타기성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하면 언어적 사유작용으로서 변계소집은 의타기성을 근거해서 혹은 촉발원인으로 의식이 주체와 대상, 혹은 자아와 세계로 쪼개지면서 집착작용을 일으킨다는 본다.
곧 의식이 전변하여, 인식 주체를 자아로 인식 대상을 세계로 생겨난 현상/유식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는 양자를 독립적으로 분별하여 실체화시켜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성유식론』에서 주목되는 점은 첫째로 변계소집/집착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기집착[我執]과 대상집착[法執]이라고 정의한 점이다. 『해심밀경』은 주로 언어적인 분별로 규정하고, 『대승장엄경론』은 언어적인 분별과 함께 심층의 종자로서 규정한 반면에,
『성유식론』에서는 집착의 대상이나 인식의 결과로서 허구의 자아(我)와 세계(法)를 ‘실체화’시키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성유식론』의 변계소집에 대한 이해는 『해심밀경』이나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의 언어적인 분별이나 훈습된 종자에 초점이 맞추어진 점을 계승하지만, 집착의 주체(能徧計)에 대해서는 안혜(安慧, 510-570)의 해석을 비판한다.
대상에 대한 집착의 주체를 ‘의식’으로 파악한 점은 안혜와 호법이 동일하지만, 그것의 외연에 대해서는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성유식론』이 전하는 안혜는 집착하는 주체를 여덟 가지 모든 의식[八識]에 의한 모든 마음현상[心所法]으로 본다. (25. 같은 책, “有義八識 及諸心所 有漏攝者 皆能遍計 虛妄分別 爲自性故 皆似所取 能取現故 說阿賴耶 以遍計所執 自性妄執種 爲所緣故”)
의식은 능취/주체와 소취/대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들의 본질은 모두가 허망한 분별로 본다. 안혜는 마음의 작용 자체를 모두 허망한 혹은 번뇌에 물든 까닭에, 이것에 의해서 분별된 세계 역시 그 자체로 모두 허망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호법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집착하는 주체를, 세상에 대한 언어적인 분별을 만들어내는 제6식과 자기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제7식으로 한정한다. (26. 같은 책, “有義第六 第七心品 執我法者 是能遍計 唯說意識 能遍計故 意及意識 名意識故 計度分別 能遍計故執我法者 必是慧故 二執必與 無明俱故”)
언어적인 분별에서 벗어난 감각기관에 의한 전오식(前五識)과 그것을 경험하는 그대로 저장하는 제8식은 제외시킨다. 물론 제8식의 저장된 정보가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과적으로 변계소집의 집착은 세계를 언어적으로 구성하는 제6식과 자아를 주장하는 제7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오식(前五識)은 존재하는 그대로 감각하고, 마음의 심층의식인 제8식에 저장된 정보를 원인과 조건으로 하여, 제6식의 분별과 제7식의 편집에 의해서 세계와 자아에 대한 집착이 발생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성유식론』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안혜는 인식의 대상과 인식 주체가 상호작용하는 인식 자체가 허망한 분별로 보지만, 반면에 호법은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허망한 분별은 마음 작용의 일부라고 본 것이다.
이상으로 『해심밀경』, 『대승장엄경론』, 『성유식론』 등 유식의 문헌을 중심으로 집착(변계소집성)의 성격과 작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종합하여 보면, 첫째 집착의 변계소집이란 언어적인 분별작용인데 기호와 개념이 상호 작용하는 사유작용[想]의 영역에 속하고, 둘째는 마음의 심층에 저장된 과거의 습기나 경험내용으로서의 종자/정보에 의해서 발생되며, 셋째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지속적으로 실체화하는 집착을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