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화병원인”

  내가 바다와 상담을 시작하려던 무렵 그녀가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금세 빚쟁이가 등 뒤에서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얼굴은 새파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온 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하였다. 나는 그 당시 바다에게 상담을 하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보다는 바다의 가련한 분위기에 감정이 이입되어 정말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아 바다를 어디에 숨겨주려던 상담자답지 않은 나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바다는 상담 초기 내내 천식 후유증으로 거친 호흡과 큰 눈동자를 굴려가며 30년을 억압당한 공포의 경험담은 현실로부터 피할 수 없는 보호받으려는 애달픔에 갇혀있었다. 바다는 모든 가족형제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특히 큰 오빠에 대한 증오는 한으로 남겨졌다. “내가 망해서 오고 갈 곳이 없을 때 큰 오빠는 나보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북으로 북쪽으로 가라고 했어요. 혹시라도 자기에게 무슨 불똥이라도 튈까봐서, 그런데 하물며 친척도 멀리하는 나에게 그때 일면식도 없던 김 사장은 나를 도와주었는데” 바다는 원망석인 미소를 힘없이 지었다.

   내가 바다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바다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긍정하고 지지해주는 정도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요. 많이 공포 스러웠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였다. 만약 나에게 최후의 방법인 영상관법이 없었다면 나는 두려움과 공포로 무너져가는 바다를 보고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금 나의 스승이신 인경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영상관법은 살아오는 동안 마음속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이미지화시켜 다시 경험하고 관찰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상은, 범어로 ‘pratibimba’인데, prati는 ‘∼에 관한’, bimba는 ‘본질’이란 뜻이다. pratibimba는 ‘본질의 사물에 관한 것’이란 뜻으로, 한역에서는 ‘영상(影像)’, ‘경상(鏡像)’ 등으로 번역되었다. 예를 들면 자기 얼굴이 거울에 비칠 때, 자기 얼굴은 본질(bimba)이고,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영상(pratibimba)이 된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다시 보는 것과 같다. 영상관법은 유식불교의 수행론이다. 나는 먼저 바다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가 어떻게 화병과 연계되었는지를 따져보고 그녀의 마음속에 얽힌 매듭을 풀어나가고자 심혈을 기우렸다.   

  바다가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화병의 원인은 바다가 가지고 있는 화병증상 가운데 첫 번째 문제는 배신감이다. 믿고 결혼한 남편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배신과 많은 빚더미에 세 식구를 남겨둔 채 달아나 다른 여자와 희희낙락 살고 있는 남편의 삶 때문에 여자로서 최악의 화병을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치심이다. 바다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진 상황, 빚쟁이들이 소주에다 쥐약을 타가지고 와서 부엌칼을 목에 대고 남편의 행방 묻는 협박에서 잘못 하면 두 아들을 남긴 채 죽을 수도 있는 절박했던 바다의 경험은 두려운, 불안, 초조, 쫒기는 기분으로 바다의 일상을 그늘에서 움츠리게 했던 경험은 수치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