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도 두 아들은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는데도 아빠라고 부르지도 않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엄마의 바지를 잡고 뒤로 숨어들었다. 바다는 두 아들의 이런 모습이 더 가슴이 미어지고 터지도록 아팠다고 말했다. 바다가 아이들에게 “왜 아빠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빠에게 달려들지 않느냐고”고 물었더니 아빠와 함께 살다보면 미래가 불투명,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지 몰라서 그랬다고 했단다. 그것으로 첫 번째 남자와는 영영 소식이 두절되었다. “잠시 스쳐간 두 번째 남자”
무일푼이 된 바다는 두 아들과 6개월 정도 여관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한 남자가 나타났다. 바로 김 사장이었다. 그 남자는 아무런 조건 없이 30만원을 주면서 “젊은 여자가 왜 이러고 사느냐고 방이라도 하나 얻으라는 것”이었다. 바다의 나이 32살, 모르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두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나만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도 아빠하고 살면 또 빚쟁이들이 언제 몰려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르고 오직 엄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상하고 친절한 아저씨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믿을 수 있었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어서 참 좋아했다.
그 남자는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서 돈 몇 푼 던져주고 갔다. 길지 않은 새로운 삶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낯선 여자가 바다를 찾아왔다. 그 여자는 바다를 보자마자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바다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왜 남의 남편을 가로채 내어 살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이없이 당한 바다는 침착하게 그녀에게 연유를 물었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은 그곳에도 있었다. 바다와 처지가 비슷한 그 여자 역시 김 사장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처지로 바다가 살고 있는 집 건너편에 또 다른 바다가 살고 있었다. 바다는 김 사장 짐을 싸서 나가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바다의 생각을 거부했다. 물론 김 사장 의견도 중요하지만 두 아이들은 김 사장의 다리를 붙들고 제발 가지 말라고, 우리와 함께 살자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아빠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은 김 사장을 통해서 받았던 사랑이 아이들의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바다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조선 천지에 나같은 여자들이 깔렸거든요, 정말 자기 친 아빠보다 두 아들이 좋아했는데"
잠깐 스쳐간 두 번째 남자 김 사장과 그렇게 이별을 했다. 그래도 바다는 그녀가 만났던 세 남자 가운데 가장 책임감이 있었던 남자로 기억하고 있다. 두 아들도 그 고마운 남자가 친 아빠였으면 좋겠다며 따르기도 했다. 바다는 그렇게 믿었던 김 사장을 보내고 나니 참으로 자신의 처지가 막막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빚쟁이들은 두 아들의 학교주소를 보고 공부하는 아들을 앞세워 집으로 찾아왔다. 소문으로 바다가 어떤 젊은 서방을 숨겨두고 잘 사는 줄 알았던 빚쟁이들은 허름하고 좁은 방 한 칸에서 늙은 김 사장과 사는 것을 보고 가더니 더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바다의 마음은 쫓김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들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다는 궁리 끝에 아이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정이야기를 했다. 6개월을 휴학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학을 오자마자 수학 경시대회 과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선생님께서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수재들을 놓쳐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흔쾌히 문서 전학을 해주었다. 바다는 전학 문서를 들고 아이들과 야반도주를 결심했다...계속
동진스님(명상상담평생교육원 교수 / 상담심리학 박사)